간호법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
5월 16일, 간호법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뒤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간호협회와 보건의료노조는 간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단체들은 간호법 저지에 나섰다.
이후 법사위에 간호법이 상정되면, 간호법 찬반 진영의 대립은 더욱 격해질 전망이다.
간호법은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에 대한 규정을 떼어내 업무 체계 정립, 처우 개선, 인력 관리 등을 체계화한 단독법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제안됐다.
간호협회와 보건의료노조는 오래전부터 간호사 처우 개선을 위한 간호법 제정을 촉구했지만, 역대 정부와 주류 정치 세력들은 외면했다.
그러다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인 간호사들이 열악한 환경을 폭로하며 노동조건 개선 투쟁에 나섰고, 이는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이에 여야 모두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처우 개선과 간호법 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열의를 발휘하지 않았고, 문재인 정부는 인력 충원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간호사들은 계속 목소리를 높였다. 5월 12일, 간호사의 날에는 5천여 명의 간호사들이 모여 인력 충원, 환자 수 법제화, 간호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민주당과 국힘이 각각 발의한 법안들을 병합해 간호법이 마련됐다. 많은 간호사들이 이 법이 통과되기를 바란다.
의미와 한계
그러나 일부 선언적 수준의 개선 내용이 포함됐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상정된 간호법은 간호사들의 바람에는 한참 못 미치는 알맹이 빠진 법안이 됐다.
다른 많은 ‘개혁’ 법안들이 그렇듯 정부나 사용자들의 ‘의무’를 강제할 조항이나 벌칙 등은 명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소소한 개선 조항들이 있더라도 그 자체로 개선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보다는 간호사들이 향후 조건 개선 투쟁에서 이 법 조항들을 명분과 근거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 긍정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병원급 의료 기관에 교육전담간호사 배치를 의무화하고, 그 비용을 국가가 일부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일정한 개선 가능성을 보여 주는 것이기는 하다. 육아휴직 등으로 발생하는 “업무 결손이 다른 간호사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야 함을 명기한 것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을 강제 의무화하는 벌칙 등의 조항이 없다.
또한 법안에는 간호사들의 염원이 큰 인력 충원과 간호사 1인당 환자 수 법제화 방안이 들어 있지 않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간호사 업무 명확화 부분도 의료법에서 한걸음도 진전하지 못했다. 현재 병원들은 의사 수 부족에 대한 대응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일명 진료보조간호사(PA)를 계속 늘리고 있다. 간호사가 의사 업무를 대행하는 것인데, 이것은 불법이다. 그래서 의료 사고 등이 발생하면 간호사를 보호할 장치가 전혀 없다. 간호법에 업무 명확화 방안이 포함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이유다.
그런데 간협과 보건의료노조는 불충분하더라도 간호법으로 얼개를 만든 후에, 노정 협상 등으로 주요 요구를 관철해 나갈 계획인 듯하다.
간호사들의 처우가 실질적으로 개선되려면, 기층 병원 노동자들의 투쟁이 필요하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해 9월 파업을 하겠다는 압박으로 정부와 인력 충원, 간호사 1인당 환자수 기준 마련, 공공의료 확충 등이 포함된 합의(9.2 노정합의)를 이뤄냈지만, 이것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
노조는 이행 점검을 위해 정부와 계속 후속 협의를 진행해 왔지만, 문재인 정부는 예산 확보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인력 충원 약속도 지키지 않았다.
더구나 윤석열 정부는 110대 국정 과제에 공공의료 확대, 간호사 등 보건의료 인력 확충 계획이나 9.2 합의 이행 등을 넣지 않았다. 반면 의료 민영화, 노동 유연화, 임금 개악 등 간호사들의 처지를 악화시킬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추진하려 한다.
의사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면, 간호법 제정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도 있다. 의협이 간호법 폐지하라고 핏대를 세우자, 벌써부터 민주당은 속도 조절에 들어가고 국힘은 발을 빼고 있다.
기층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설 때에만 실질적인 조건 개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간호법에 대한 과장과 왜곡
의협은 간호법이 ‘간호사 특혜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봤듯이 간호법은 간호사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는 데 매우 미흡하다.
의협이 간호법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것이 장차 자신들의 기득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의협은 예전부터 간호사의 단독 처방권과 개업 허용을 크게 우려해 왔다. 간호사들이 의사들(특히 개원의)의 시장을 잠식해 소득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간호법에는 간호사들의 단독 처방권과 개업을 허용하는 내용이 없지만, 의협은 간호법 제정 이후 법 개정을 통해 단독 처방권 등을 허용할 수 있다며 간호법 제정을 아예 반대한다.
간호법 제정 이후 간호사 인력을 지역 돌봄 기관에 더 많이 배치하고 숙련 간호사에겐 나름의 권한(단독 처방권 등)을 부여하는 방안이 장차 논의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이 왜 문제인가? 의사 수 부족과 지역간 불균형에 대응하기 위해 간호사 인력을 늘리고, 지역 돌봄 기관에 적절하게 배치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 확대의 일환으로 노동자·서민에게 이롭다.
이처럼 자신들의 기득권만 지키려고 간호사들의 처우 개선과 의료 서비스 확대에 반대하는 의협의 간호법 반대에는 명분도 정당성도 없다.
한편, 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은 간호법이 간호조무사의 일자리를 축소한다며 간호법에 반대한다. 그러나 간호법에는 간호조무사를 간호사로 대체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와 지위는 현행 의료법을 따르기 때문에 달라지는 게 없다.
그런데도 간무협이 간호법에 반대하는 것은 간호사 단체들과의 갈등이 쌓인 결과인 듯하다.
간호조무사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박봉에 시달리며 온갖 차별과 천대를 받아 왔다. 이에 간무협은 처우 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해 전문대 교육과정 신설, 면허제 도입, 간호사 편입 제도 마련 등을 요구해왔다.
하지만 간협과 보건의료노조는 간호조무사들의 처우 개선에 관심을 갖지 않았고, 간무협의 요구 일부에 반대했다. 이것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의 갈등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
잘 조직된 간호사들이 간호조무사들의 요구를 지지하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간호법에 간호조무사의 염원과 간무협의 요구도 포함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간무협과 일부 간호조무사들의 간호법 반대는 부적절하다. 간호법이 다른 직역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차별을 양산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다. 기층에서 투쟁을 조직해 처우 개선을 이루려고 해야 한다.